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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6일 월요일

Belief

This is not about the Schopenhauer, but I can't help writing my opinions after seeing some clips on Afghanistan. I'm no expert on Muslim religion, so what I'm saying can be entirely a bullshit.


I was astounded by this public flogging taking place in 2021, https://youtu.be/1x3sAX-9poo?t=1834. A Taliban judge flogged a woman in the name of her indecency that she called with a boy on the phone. What a ridicule. 


After watching this harsh video, I pondered why they have this kind of cruelty on women, based on their bible, Quran. The savage period that people enslaved and belittled other's lives was written on the outdated book which modern people have respected since its appearance. Given a lot of controversies and wars related to religions, all the same shits keep happening all around the world, centered around religions. Those prove that It's significantly dangerous to respect only one idea for long time in this world dominated by relativism. Jesus, Budda, Allah might have predicted those sad scenes. 


The point is that even if their outdated books have spread good and bad words, how they are utilized is up to humans who read them. People who congregate under one idea without any room for other ideas have a destructive power on others, infusing their belief into innocent people with a brainwashing strategy that makes you discard all other options to consider in their life.


We should be wary of people hiding their rapacious desire under the name of zealot and removing people's freedom in which they can be happier. We should extol people who are willing to embrace diversities and respect differences.

2021년 2월 14일 일요일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 작품

 P122

 나의 학설로부터 당연히, 모든 존재가 자신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도출된다. 자연, 즉 결코 속일 수 없고 천재처럼 순진한 자연은 자신을 꾸밈없이 표명한다. 모든 존재는 자신과 정확히 같은 다른 어떤 것에 생명의 불을 점화할 뿐이며, 그다음에 그것의 재료는 밖애서, 형식과 운동은 자신으로부터 조달하여 우리 눈앞에서 자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성장과 발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경험적으로도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외적 합목적성. 의지의 객관화의 여러 단계

p 271 ~ 272.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의지의 적절한 객관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의지 현상이 단계별로 나타나야 한다는 내적인 필연성도 이러한 현상 자체의 전체에서 외적인 필연성을 통해 표현되는 것을 발견한다. 말하자면 외적 필연성에 의해 인간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며, 이들 동물은 단계별로 하위의 동물과 아울러 식물도 필요로 하며, 식물은 다시 땅을 필요로 해서, 물이나 화학적 요소 및 그 화합물을 필요로 하며, 행성이나 태양, 이러한 태양을 중심으로 한 자전과 공전, 황도의 경사 등을 필요한다. 요컨대 이것은 의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또 의지는 허기진 의지이기 때문에 의지 자체가 자신을 먹어치우며 살아가야 하는데 기인한다. 추구, 불안 및 고뇌가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상들이 한없이 상이하고 다양하지만 물자체인 의지가 단일하다는 인식이야말로 자연의 모든 산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확실히 유사하다는 사실과, 함께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같은 테마의 변종이라고 볼 수 있는 친족 간의 유사성에 대해 진정한 해명을 해주듯이, 우리가 방금 살펴본 등급의 필연성, 세계의 모든 부분들의 본질적인 연관인 앞서 말한 화음, 같은 정도로 분명하고도 깊이 파악된 이런 것을 인식함으로써 우리에게는 내적인 본질, 우리가 심지어 고찰하고 평가하면서 선천적이라고 전제하는 모든 유기적인 자연 산물의의 부인할 수 없는 합목적성의 의미를 참되고도 충분하게 통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합목적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내적 합목적성으로, 즉 어떤 개별적인 유기체의 모든 부분들이 질서 있게 일치해서 그로 인해 유기체와 그 것의 류가 유지되고, 그 때문에 유기체와 그 류의 유지가 질서의 목표로 나타나는 것이 내적 합목적성이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는 외적 합목적성으로, 말하자면 전체 유기적 자연이나, 또는 개별적인 동물 류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고, 그 때문에 이러한 목표에 대한 수단으로서 우리의 평가에 맞서는, 일반적으로 비유기적인 자연의 유기적인 자연에 대한 관계나, 또는 유기적 자연의 개별적 부분들 상호간의 관계도 외적 합목적성이다.

우리는 의지한다. 의지의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을 의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단계들을 거쳐 생겨났다. 의지의 객관화의 낮은 것 부터 높은 것 까지 거쳐서 우리가 의식하며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단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낮은 단계에서부터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다. 내가 현재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높은 단계를 거쳐 나를 도와준 모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지의 특성대로 그러한 낮은 단계에서부터 먹어치우며 살아오게 된 것이다.

내적 합목적성에 관한 것은 여러가지 관계 비유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다음에 다뤄야 할 것 같다.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반발력과 견인력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p.264
마침내 우리는, 말하자면 의지 현상의 본질이
칸트에 의해 반발력과 견인력으로 올바로 표현된 한에서,
심지어 단순한 물질에서 이미, 투쟁 그 자체로서 보면,
이제까지 고찰한 모든 의지 현상들의 서로에 대한 투쟁을 다시 인식할 수 있다.
그리하여 물질은 서로에 맞서는 힘들의 투쟁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갖게 된다.

만약 우리가 물질의 모든 화학적 차이를 도외시하거나,
또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를 아주 멀리, 화학적 차이가 없는 곳 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이제 단순한 물질,
구형으로 된 세계, 그 세계의 삶, 즉 의지의 객관화를 이루는 견인력과
반발력 간의 투쟁인 것이다.

오늘은 카페에 와서 쇼펜하우어를 잠시 읽었다. 제대로 집중해서 책을 읽은지가 오래 되었었다. 오늘은 약간 무언가 착잡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지만, 위의 구절을 읽고나서 부정적인 기운이 달아나 버렸다. 항상 무언가 힘들어질려고 할 때 마다 나에게 힘을 주는 책이다. 나도 이러한 도움이되는 나의 철학을 글로 써서 남들을 도와주고 싶다.

오늘 예비군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고 나서, 밥 먹으러 나오면서 고민했다. 지금 나는 삶의 의미를 잃고 있는 거 같다고. 나는 이전 포스트들 중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항상 명확히 인지하고 체화하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으러 갔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러 가는 중에 생각한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돈을 잘 벌게 되는 것일까", "유명세를 얻어 인기 있어 지는 것일까", 등의 여러 물질적인 것, 의미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이 나왔지만, 그런 것들은 반드시 아니라는 생각이 나의 마음속에서 튀어나 왔다. 밥을 먹고 나와서는 생각 없이 카페에 와서 위의 구절을 읽고 머리 속에 있던 복잡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깔끔히 사라졌다. 쇼펜하우어가 내 머릿 속을 정리해준 느낌이였다.

다시 아까 집을 나서면서 가졌던 질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내가 아까 생각했던 질문에 대한 물질적인 답은 '삶의 의미'에 대한 것이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좀 더 다른 것이다. 어쨋든 그 두 가지에 대해서 다시 정리를 해야할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나를 찾는 것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그렇게 되려고 시도 했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그 결과로 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었기에, 이전에 찾아 놓았었기에, 그리고 또 다시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기에, '삶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사람의 고유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